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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신라 왕조 계보

경문왕[ 景文王 ]

by 1티어 율쌤 202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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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왕[ 景文王 ]

 

신라의 제48대 왕(재위 861∼875).

 


성은 김(金), 이름은 응렴(膺廉/凝廉)이며 시호는 경문(景文)이다. 신라의 제43대 희강왕(僖康王, 재위 836∼838)의 손자로 아버지는 아찬(阿湌) 김계명(金啓明)이다. 어머니는 광화부인(光和夫人) 박씨(朴氏)로 광의부인(光義夫人)이라고도 한다. 제47대 헌안왕(憲安王, 재위 857∼861)의 두 딸을 모두 왕비로 맞이해 김정(金晸, 제49대 헌강왕), 김황(金晃, 제50대 정강왕), 김만(金曼, 제51대 진성여왕) 등을 낳았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는 어머니인 광화부인이 신무왕의 딸이며, 왕비는 헌안왕의 딸인 문자왕후(文資王后)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삼국사기》에는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弓裔, ?∼918)가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869년(경문왕 9) 왕자 김윤(金胤)을 당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신라에서는 당나라로 사신이나 숙위(宿衛)로 보낸 왕족들에게도 왕자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므로 김윤이 경문왕의 왕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경문왕은 860년(헌안왕 4) 15세의 나이로 헌안왕의 맏딸인 영화부인(寧花夫人) 김씨와 결혼했다. 《삼국사기》에는 당시 헌안왕이 임해전(臨海殿)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공부하고 돌아온 경문왕에게 선인(善人)에 관해 질문을 하고는 그의 답변에 탄복해 사위로 삼기로 결심하고 20살인 맏딸과 19세인 둘째딸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맏딸보다 둘째딸의 외모가 나았으므로 경문왕의 부모는 둘째딸과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흥륜사(興輪寺)의 중은 맏딸과 결혼하면 3가지 이익이 있고 둘째딸과 결혼하면 3가지 손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경문왕은 왕의 뜻에 따르겠다고 하여 맏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흥륜사의 중이 아니라 낭도(郎徒) 가운데 하나인 범교사(範敎師)라는 인물의 권유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경문왕이 18세에 국선(國仙)이 되었으며, 20세인 약관(弱冠)의 나이에 헌안왕의 사위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문왕은 861년(헌안왕 5) 정월에 헌안왕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헌안왕은 죽기 전에 사위인 경문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경문왕은 862년(경문왕 2) 이찬 김정(金正)을 상대등(上大等), 아찬 위진(魏珍)을 시중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863년(경문왕 3)에는 왕비 영화부인의 동생을 둘째왕비로 삼았다. 《삼국사기》에는 당시 경문왕이 앞서 맏딸과 결혼하라고 권유했던 흥륜사의 중에게 당시 말했던 3가지 이익이 무엇인가를 묻자 헌안왕의 뜻에 부합해 왕의 총애를 받게 되는 것이 첫째 이익이고, 그 때문에 왕위를 잇게 된 것이 둘째 이익이며, 이로써 마음에 두고 있던 둘째딸도 얻게 된 것이 셋째 이익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866년(경문왕 6)에는 부친인 김계명을 의공대왕(懿恭大王), 모친인 광화부인을 광의왕태후(光懿王太后)로 봉했다. 그리고 부인 김씨를 문의왕비(文懿王妃), 맏아들인 김정을 태자로 삼았다. 874년(경문왕 14)에는 상대등 김정이 죽자 시중인 위진을 상대등으로 삼고, 인흥(藺興)을 새로 시중으로 임명했다.

경문왕은 잇따른 내분으로 약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863년 음력 2월에는 국학(國學)으로 행차하여 학자들로 하여금 경서를 강론하게 하고 포상을 하였다. 864년(경문왕 4)에는 직접 감은사(感恩寺)로 가서 바다를 향해 제사를 지냈고, 866년 음력 정월 15일에는 황룡사(皇龍寺)에서 연등행사를 보고 백관들을 위해 연회를 열었다. 868년(경문왕 8) 황룡사탑이 벼락을 맞아 파손되자 871년(경문왕 11)에 이를 고쳐쌓기 시작해 873년(경문왕 13)에 9층 22장(丈)의 높이로 완공했다. 오랜 내분의 과정에서 훼손된 궁궐의 정비에도 힘을 기울여 임해전(臨海殿, 867년), 조원전(朝元殿, 868년), 월상루(月上樓, 871년), 월정당(月正堂, 874년) 등을 잇달아 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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