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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Minsk ]

by 1티어 율쌤 2022. 7. 14.

민스크[ Minsk ]

 

벨라루스의 수도이자, 민스크주의 주도(州都).

 

벨라루스의 수도. 언어는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베레지나강의 지류인 스비슬로치강 연변에 하며, 11세기부터 기록에 나타나 있는 오래된 도시로 여러 나라의 분쟁지로서 대단히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다. 

12세기에는 민스크 공국(公國)의 중심지로 무역에 의하여 번영했다. 도시 설립 초기에는 동 슬라브인들이 유입했으며,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시대에는 폴란드인과 유대인들이 이주해 왔다. 1569년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시절 민스크는 다수의 고관들이 이주하는 폴란드인 중심 사회로 형성되었으며, 16세기에 들어 정치, 문화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이후 1700년대 대북방전쟁 시기에는 스웨덴 및 러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1812년에는 프랑스 군대가 일시 민스크를 점령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 시대로 오면서 러시아인들이 정착하여 슬라브 문화가 부흥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민스크를 경유하는 모스크바-민스크-바르샤바간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중대한 철도 분기점으로서 발전하였다.  20세기 초, 민스크는 벨라루스에서 노동 운동의 중심지였다. 소련공산당(CPSU)의 전신이었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ussian Social-Democratic Worker’s Party)은 러시아 최초로 마르크스주의를 채택했으며 1898년 3월, 민크스에서 개최된 노동자계급해방투쟁동맹을 통해 창당했다. 또한, 벨라루스 민족 부흥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민스크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1917년 노동자 소비에트 (A Workers' Soviet)가 설립되었고 노동자와 군인 등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민스크는 러시아군 서부전선의 사령부 역할을 담당하며 군병원과 군수 보급기지를 수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민스크는 독일과 소련의 격렬한 전투가 이뤄졌던 장소였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민스크 시가지가 러시아 군대의 전선기지가 되자 큰 피해를 입고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스탈린 양식의 도시계획을 바탕으로 재건이 진행되었다.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하여 벨라루스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시가지는 9개의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벨라루스의 주요 문화 중심지로 국립 아카데미 볼쇼이 오페라 벨라루스 발레 극장(Нацыянальны акадэмічны Вялікі тэатар опэры і балету)이 있다. 유명한 종교 건축물로는 1847년에 지어진 막달라 마리아 러시아 정교회(Царква Сьвятой Марыі Магдалены), 붉은 교회로 불리는 성 시몬 알레나(Касьцёл Сьвятых Сымона і Алены) 성당, 성령 대러시아 정교회(катэдральны сабор), 성모 마리아 로마 카톨릭 성당(Архікатэдральны касьцёл імя Панны Марыі)등 다수가 있다. 또한, 벨라루스 국립대학, 민스크 국립언어대학, 벨라루스 주립 농업기술대학, 벨라루스 국립 의과대학 등 벨라루스 유수의 교육기관도 밀집해있다. 


민스크 중앙역(Мінскі чыгуначны)에서 폴란드 바르샤바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잇는 노선과 라트비아의 리에파아야(Liepāja) 등지로의 노선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