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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신라 왕조 계보

자비마립간[ 慈悲麻立干 ]

by 1티어 율쌤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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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마립간[ 慈悲麻立干 ] 

 

신라의 제20대 왕 (재위 458~479).

성은 김(金), 이름[諱]은 자비(慈悲)이며 왕호(王號)는 마립간(麻立干)이다. 신라의 제19대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재위 417~458)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제18대 실성마립간(實聖麻立干, 재위 402~417)의 딸인 아로부인[阿老夫人, 차로부인(次老夫人)] 김씨(金氏)이다. 그는 숙부인 서불한(舒弗邯) 미사흔(未斯欣)의 딸 김씨(金氏)를 왕비로 맞이해 제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재위 479∼500)을 낳았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 ‘왕력(王曆)’ 편에는 왕비가 파호 갈문왕(巴胡葛文王)의 딸이나 각간(角干) 미흔(未欣)의 딸 등으로 되어 있으며, 소지마립간이 자비마립간의 셋째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은 458년(눌지 42) 가을에 아버지인 눌지마립간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재위기간에 신라는 왜와 고구려의 잦은 침략에 시달렸다.

왜인들은 459년(자비 2) 병선 100여 척을 이끌고 동쪽 해안으로 쳐들어와 왕성인 월성(月城)을 포위했다. 신라는 왜인들의 공격에 맞서 월성을 지켜냈고, 퇴각하는 왜인들을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왜인들은 462년(자비 5) 여름에도 활개성(活開城)을 공격해 1천 명을 붙잡아갔다. 이듬해 봄에도 다시 삽량성(歃良城)을 공격해왔으나, 벌지(伐智)와 덕지(德智)가 이끄는 신라군이 매복해 있다가 퇴각하는 왜인들을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왜인들은 476년(자비 19)에도 신라의 동쪽 해안지역을 침공해왔으나 덕지가 이끄는 신라군에게 패퇴했다. 이듬해에는 다섯 길로 군사를 나누어 다시 신라를 공격해왔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났다.

고구려는 468년(자비 11) 봄에 말갈(靺鞨)과 함께 신라의 실직성(悉直城)에 쳐들어왔다. 자비마립간은 고구려의 남하를 막기 위해 하슬라(何瑟羅) 지역의 15세 이상 주민들을 징발해 니하(泥河)에 성을 쌓았다. 당시 신라는 433년(눌지 17) 백제(百濟)와 화친을 한 뒤로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를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474년(자비 17)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해오자 자비마립간은 백제 개로왕(蓋鹵王)의 요청을 받아들여 원병을 보냈다. 하지만 신라의 원병이 도착하기 전에 한성(漢城)은 이미 고구려군에 함락되고 개로왕도 살해되었다.

이처럼 왜와 고구려의 잦은 침략에 시달렸으므로 자비마립간은 군사적 방어체제의 정비에 주력하여 국정을 운영했다. 469년(자비 12) 금성(金城)의 방(坊)과 리(里)에 이름을 붙여 행정체계를 정비했으며, 473년(자비 16)에는 아찬(阿飡) 벌지와 급찬(級飡) 덕지를 좌장군(左將軍)과 우장군(右將軍)으로 삼았다. 475년(자비 18)에는 왕궁을 월성에서 명활성(明活城)으로 옮겼는데, 그 뒤 488년(소지 10) 소지마립간이 월성을 보수해 다시 그곳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는 명활성이 신라의 왕성이 되었다. 그리고 왜와 고구려의 침공을 막기 위해 곳곳에 성을 쌓았다. 470년(자비 13) 3년의 공사 끝에 삼년산성(三年山城)을 완성했으며, 471년(자비 14)에는 모로성(芼老城)을 쌓았다. 474년(자비 17)에는 일모(一牟), 사시(沙尸), 광석(廣石), 답달(沓達), 구례(仇禮), 좌라(坐羅) 등에 성을 쌓았다.

자비마립간 때 신라에는 천재지변이 자주 발생했다. 465년(자비 8)에는 큰 홍수가 나서 17군데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사벌군(沙伐郡)에서는 메뚜기떼가 창궐했다. 469년(자비 12)에는 서쪽 지방에서 홍수가 나서 많은 민가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피해를 입었는데, 왕은 직접 홍수피해를 입은 주(州)와 군(郡)을 돌아보았다. 471년(자비 14)에는 금성에서 땅이 갈라지는 일이 벌어졌고, 겨울에는 전염병이 돌았다. 478년(자비 21)에는 금성에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다.

자비마립간은 479년(자비 22) 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맏아들인 소지마립간이 왕위를 계승했다. 《삼국유사》에는 자비마립간 재위기간에 신라가 처음으로 중국의 오(吳)나라와 통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등에는 자비마립간 때에 백결선생(百結先生)이 대악(碓樂, 방아타령)을 지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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