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太祖 ]
조선의 제1대 왕(재위 1392∼1398).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였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朝鮮)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본관 전주(全州). 자 중결(仲潔). 호 송헌(松軒). 성 이(李). 휘(諱) 성계(成桂). 시호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 즉위 후 휘를 단(旦), 자를 군진(君晉)으로 고쳤다. 비(妃)는 한경민(韓敬敏)의 딸 신의왕후(神懿王后), 계비는 강윤성(康允成)의 딸 신덕왕후(神德王后)이다. 함경도 영흥(永興)에서 아버지 이자춘(李子春)과 어머니 최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1335년(충숙왕 4년)에 출생하였다. 그의 선조는 전주에 살았으나 고조부 이안사 대에 간도지방으로 이주해서 증조부 이행리, 조부 이춘, 부친 이자춘까지 원나라 지방관리를 지냈다. 원나라가 쇠퇴하자 이자춘이 고려에 귀화하였다. 1356년(공민왕 5)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내부(來附)한 뒤 이듬해 유인우(柳仁雨)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이에 내응(內應)하여 공을 세웠고, 후에 아버지의 벼슬을 이어받아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 ·동북면상만호(東北面上萬戶)가 되었다.
1361년 반란을 일으킨 독로강만호(禿魯江萬戶) 박의(朴儀)를 토벌하였으며, 같은 해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개경(開京)이 함락되자, 다음해 사병 2,000명을 거느리고 수도 탈환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워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승진되었다. 그리고 원(元)나라의 나하추[納哈出]가 함경도 홍원(洪原))으로 침입하자 함흥평야에서 이를 격파하였다. 1364년 원나라 연경(燕京)에 있던 최유(崔濡)가 충숙왕(忠肅王)의 아우 덕흥군(德興君)을 추대하고 1만 명의 군대로 평안도에 침입하여 공민왕을 폐하려 하자 최영(崔瑩)과 함께 이들을 달천강(악川江)에서 대파하고, 이어 여진족(女眞族)의 삼선(三善) ·삼개(三介)가 함경도 화주(和州)에 침입한 것을 격퇴하였다. 이성계는 출정한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여 무인으로서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해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익대공신(翊戴功臣)에 책록되었다. 1368년 동북면원수(東北面元帥) ·문하성지사(門下省知事)로 승진, 1372년(공민왕 21) 화령부윤(和寧府尹)이 되고, 1377년(우왕 3) 왜구가 개경을 위협할 때 서강부원수(西江副元帥)로서 이를 격퇴하였다. 1380년 양광 ·전라 ·경상도도순찰사(楊廣全羅慶尙道都巡察使)가 되어 운봉(雲峰)에서 왜구를 소탕하고 1382년 찬성사(贊成事)로서 동북면도지휘사가 되었다. 다음해 이지란(李之蘭)과 함께 함경도에 침입한 호바투[胡拔都]의 군대를 길주(吉州)에서 대파하였으며, 1384년 동북면도원수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가 되었고 이듬해 함경도 함주(咸州)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