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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

광무개혁[ 光武改革 ]

by 1티어 율쌤 2022. 1. 27.

광무개혁[  ]

광무 연간에 실시된 개혁.

정치 개혁
각국의 대원수례(大元帥例)에 의하여 황제가 육·해군을 친히 통솔하고, 국방·용병(用兵)·군사에 관한 각종 명령권과 군부 및 중앙과 지방의 군대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가진 원수부(元帥府)가 창설되었다. 또한 헌병대·포병·공병·치중병(輜重兵:군대의 화물을 담당하는 병사)·군악대에 대한 새로운 관제가 마련되었으며, 육군법률(陸軍法律)·육군법원(陸軍法院)·육군감옥(陸軍監獄) 등이 창설되었다. 지방군제 역시 전국의 지방군을 진위대(鎭衛隊)로 통합 개편하는 한편, 무관학교 관제(武官學校官制)를 새로이 반포하여 1898년 무관학교가 개교되었다. 

헌법 반포
최초의 헌법인 대한국제(大韓國制)가 반포되었고, 훈장제도(勳章制度)가 창설되었으며, 국가(國歌) 및 각종 기(旗) 등이 제정·발표되었다. 청국을 비롯한 각국과의 통상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국제적 지위가 향상되었으며, 북간도관리(北間島管理)를 설치하여 북간도의 이주민을 보호하고, 도문강(圖們江) 이남 지역을 영토로 편입시킬 것을 꾀하기도 하였다. 

사회 경제 개혁
사회 경제적인 개혁으로서 농상공부에서 주관하던 홍삼(紅蔘)의 제조 및 광산사업과 탁지부 주관의 둔토(屯土)가 궁내부(宮內府)로 이관되었고, 내장사(內藏司)는 내장원(內藏院)으로 개편되어 왕실 재정수입이 증가하게 되었다. 재정상의 적자를 보완하기 위하여 시작된 백동화(白銅貨)의 주조는 화폐제도가 문란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전결(田結)의 정확한 파악을 위하여 양지아문(量地衙門)을 설치하여 양전사업(量田事業)을 실시하였으며, 지계제도(地契制度)를 채택하여 지계아문(地契衙門)에서 토지문권(土地文券)을 발급하였다. 

한편 개항 후 20년간 외국 자본주의 상품의 생활필수품화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근대적 상공업을 진흥·육성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직접 공장을 설치하기도 하였고, 주요 회사에 투자를 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여 상공업 진흥에 힘썼다. 

또한, 민간 제조장의 근대기술수용을 장려하고 기술자 장려책을 강구하는 등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교육 정책으로서 해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근대산업기술을 습득시켰다. 그 결과 인공양잠전습소(人工養蠶傳習所)·직조권업장(織造勸業場)·한성제직회사(漢城製織會社) 등 많은 근대적 회사들이 설립되었고, 철도·운수 부문에서도 근대적인 기술과 기계가 도입되었다. 

상업의 진흥책으로는 한성은행(漢城銀行)·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대한은행(大韓銀行) 등의 금융기관이 설립되었다. 교육면 역시 실업교육을 위주로 하여 체신사무 요원의 양성을 위한 우편학당(郵便學堂)·전무학당(電務學堂)이 설립되었고, 상공인 양성을 위한 상공업학교와 의사양성을 위해서 경성의학교(京城醫學校)가 설립되었다. 

한편으로 재판소의 위치와 관할구역이 재조정되었으며, 재판소 구성법(裁判所構成法)을 개정하여 고등재판소를 평리원(平理院)으로 고치고, 황족의 범죄를 다스리기 위한 특별법원(特別法院)과 순회재판소가 설치되었다. 의료사업으로는 광제원(廣濟院)이 설립되고 전염병 예방규칙이 반포되었으며, 진휼기관(賑恤機關)으로 혜민원(惠民院)과 총혜민사(總惠民社)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추진되던 광무개혁도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이 재진출함에 따라 중단되었다. 보수파에 의해 추진된 갑오·을미개혁을 답습한 것이었으나 국가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지향하여, 비교적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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