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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獨立新聞 ]

by 1티어 율쌤 2022. 1. 27.

 독립신문[ 獨立新聞 ]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 국가등록문화재 제506호이다.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徐載弼)이 정부로부터 4,400원(3,000원은 신문사 창설비, 1,400원은 서재필의 주택구입비)의 자금을 지급받아 1896년 4월 7일 창간하였다. 처음에는 가로 22cm, 세로 33cm의 국배판 정도 크기로 4면 가운데 3면은 한글전용 《독립신문》으로 편집하고, 마지막 1면은 영문판 《The Independent》로 편집하였다. 창간 이듬해인 1897년 1월 5일자부터 국문판과 영문판을 분리하여 두 가지 신문을 발행하였다. 이 신문은 여러 가지로 한국 신문사상 획기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한국사회의 발전과 민중의 계몽을 위하여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한 시대의 기념비적인 신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신문》은 창간사에서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변자가 되고, 정부가 하는 일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알릴 것이며, 부정부패 탐관오리 등을 고발할 것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독립신문》이 정부의 탄압을 받는 한편 수구파의 미움을 사게 되자 서재필은 1898년 5월 14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윤치호(尹致昊)가 주필 겸 실질상의 관리자로 운영을 맡았다. 윤치호는 창간 이후 격일간으로 주(週) 3회 발행하던 것을 1898년 7월 1일부터 일간으로 발전시켰다. 1899년 1월 윤치호가 덕원부사겸원산감리(德源府使兼元山監理)가 되어 신문발행에서 손을 떼자 H.G.아펜젤러가 한동안 주필이 되었고, 6월 1일부터는 영국인 엠벌리가 맡았으나, 정부가 이 신문을 매수하여 1899년 12월 4일자로 폐간하였다. 

한국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가 정부에서 발간한 신문이었으며, 한문으로만 기사를 썼던 데 비해 《독립신문》의 한글전용은, 민중을 위해 알기 쉬운 신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또, 《독립신문》은 신문의 중요성을 일반에 널리 인식시켜 그 후에 여러 민간 신문이 창간되는 계기를 만들어 1898년에는 《매일신문 每日新聞》 《제국신문帝國新聞》 등이 창간되었고, 이들 신문의 체재와 기사 작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1957년부터 언론계는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였다. 한글판 6권, 영문판 3권이 영인본으로 나와 있다. 

2012년 10월 17일 국가등록문화재 제506호로 지정되었으며, 연세대학교가 소유 및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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