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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고구려 왕조 계보

동명성왕[ 東明聖王 ]

by 1티어 율쌤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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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시조(재위 BC 37∼BC 19). 《삼국사기》에 따르면 동부여의 금와왕이 데려온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낳은 알에서 나왔다고 한다. 활을 잘 쏘고 영특하여 왕자들이 시기해 죽이려 하자 이를 피해 졸본부여로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웠다.


 이름은 주몽(朱蒙)·추모(鄒牟)·상해(象解)·추몽(鄒蒙)·중모(中牟)·중모(仲牟)·도모(都慕) 등이 전한다.

그를 주몽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동명성왕>조에 나와 있다.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은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이 주몽(朱蒙)이다[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하였다]. 그의 나이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에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도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동명왕을 부르는 호칭이 많은데, 이는 당시에는 발음이 같거나 비슷하면 다른 한자로도 같은 이름이나 지명 따위를 표기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동부여왕(東扶餘王) 해부루(解夫婁)가 죽고 금와(金蛙)가 즉위하였는데, 이때 금와왕은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났다. 유화는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가 자기를 유인하여 사통(私通)하고는 돌아오지 않아 부모에게 쫓겨나 우발수에 살고 있다 하므로, 금와왕은 유화를 데려다 궁중에 유폐시켰다.

어느날 유화는 햇빛을 받고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그 알에서 남아(男兒)가 나와 성장하니 이가 곧 주몽이다. 주몽이 7세 때 이미 활을 잘 쏘는 등 영특하고 총명하자 금와왕의 장자 대소(帶素) 등 일곱 왕자 및 여러 신하들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다.

이에 유화 부인의 뜻을 따라 화를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로 남하, BC 37년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성(姓)을 고(高)라 하였다. BC 36년 비류국(沸流國)의 왕 송양(松讓)의 항복을 받았고, BC 34년에는 성곽과 궁실을 건립하였으며, BC 33년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BC 28년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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