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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백제 왕조 계보

삼근왕[ 三斤王 ]

by 1티어 율쌤 2022.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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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근왕[ 三斤王 ] 

 

성은 부여(扶餘)이며, 임걸왕(壬乞王)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삼걸왕(三乞王)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의 제22대 문주왕(文周王, 재위 475∼477)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생모와 왕비,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삼근왕은 477년(문주왕 3) 여름에 태자로 봉해졌으며, 그해 가을에 부왕인 문주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병관좌평(兵官佐平) 해구(解仇)의 사주를 받은 도적에게 살해되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재위 412~491)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웅진(熊津, 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직후였으므로 왕권이 크게 약화되고 귀족들 사이의 갈등도 커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삼근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의 나이가 13세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병관좌평인 해구가 군사와 국정에 관한 권한을 모두 장악하고 전횡을 하였다.

478년 봄, 해구는 은솔(恩率) 연신(燕信)과 함께 무리를 모아 대두성(大豆城)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삼근왕은 좌평 진남(眞男)에게 2천의 병력으로 이를 토벌하게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다시 덕솔(德率) 진로(眞老)과 5백의 정병을 보내 해구를 죽였다. 연신은 고구려로 도망쳤으며, 삼근왕은 그의 가족들을 붙잡아 웅진에서 참수했다. 이듬해인 479년(삼근왕 3) 가을에 삼근왕은 반란의 거점이던 대두성을 두곡(斗谷)으로 옮겼다.

삼근왕은 479년 겨울에 15세의 나이로 죽었고, 숙부 곤지(昆支)의 아들인 모대(牟大)가 24대 동성왕(東城王, 재위 479∼501)으로 왕위를 이었다. 장례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왕릉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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