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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

조선어 학회

by 1티어 율쌤 2022. 2. 16.

조선어 학회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연구한 학술 단체

1931년에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장지영, 이윤재, 최현배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으며, 《조선어 사전》 편찬을 시작했다. 1942년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해체될 위기를 맞기도 했으며, 8 · 15 광복 후에는 ‘한글 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3 · 1 운동으로 터져 나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에 놀란 일제는 1920년대부터 우리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폈다. 이에 장지영, 이윤재, 최현배 등은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한 학회를 만들었다. 여기서 ‘학회’란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 만든 모임을 뜻한다. 장지영을 비롯한 국어학자들은 일제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면 우리 고유의 말과 글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조선어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국어에 대한 연구와 강연 활동을 주로 했다. 1929년에는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끝을 맺지는 못했다. 1931년에는 학회의 이름을 ‘조선어 학회’로 고쳤고, 1933년에는 오늘날에도 한글 표기의 기준이 되고 있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조선어 학회는 1942년에 일어난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다. 일제는 1937년부터 모든 관공서에서 일본어만 쓰게 했고, 1940년부터는 학교에서 우리말을 아예 못 쓰게 했다. 우리의 말과 글은 물론 역사와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작은 사건을 꼬투리 잡아 조선어 학회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몇몇 사람들을 모질게 고문해 조선어 학회가 학술 단체를 가장한 독립운동 단체라는 거짓 자백을 받아냈고, 이를 구실로 회원 33명을 잡아간 뒤 28명을 감옥에 가둔 것이다. 결국 모진 고문과 고통스러운 감옥 생활 끝에 이윤재, 한징 등은 목숨을 잃었다.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 학회 사건 이후 조선어 학회는 큰 타격을 입고 위축되었으나 8 · 15 광복 후에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에는 학회의 이름을 한글 학회로 바꾸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한글 학회는 1929년에 시작한 《조선어 사전》 편찬 사업을 이어받아, 1957년에 6권의 《큰사전》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