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 法王 ]
성은 부여(夫餘), 이름[諱]은 선(宣) 또는 효순(孝順)으로 《수서(隋書)》에는 여선(餘宣)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호는 법왕(法王)이다. 제28대 혜왕(惠王, 재위 598~599)의 맏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수서》에는 법왕이 창왕(昌王)이라고도 하는 제27대 위덕왕(威德王, 재위 554~598)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혜왕이 즉위한 다음해에 죽자 법왕이 왕위를 이었으나, 그도 혜왕과 마찬가지로 재위 2년 만에 죽었다. 이처럼 재위 기간이 짧기 때문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법왕과 관련해서는 많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시호에서도 나타나듯이 불교를 숭상하여 왕위에 오른 599년 12월에 살생을 금지하고 민가에서 사냥용으로 기르는 매와 새매를 모두 놓아주고 고기 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모두 태워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왕흥사(王興寺)를 창건하고 승려 30인을 출가시켰으며, 가뭄이 들자 칠악사(漆岳寺)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왕흥사가 600년(법왕 2)에 창건되어 무왕(武王) 때인 634년(무왕 35)에 완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무왕 때에 지명법사(知命法師)의 도움을 받아 연못을 흙으로 덮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07년 충청남도 부여의 왕흥사지(王興寺址)에서 발굴된 청동 사리함에는 “정유년(577년) 2월 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사찰을 세웠다. 본래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爲亡王子爲刹本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왕흥사가 법왕 이전인 위덕왕 때에 이미 창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법왕은 즉위 이듬해 여름에 죽어서 아들이 장(璋)이 왕위를 이었다(제30대 무왕). 법왕의 가족관계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데, 무왕이 조카인 복신(福信)을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는 기록 등으로 볼 때 적어도 무왕 이외에 하나 이상의 아들은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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