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왕[ 惠王 ]
성은 부여(扶餘)이며, 이름[諱]은 계(季)이다. 시호는 혜(惠)이며 백제의 제26대 성왕(聖王, 재위 523∼554)의 둘째아들이며 제27대 위덕왕(威德王, 재위 554∼598)의 동생이다. 그러나 《니혼쇼키(日本書紀)》에는 혜(惠)가 시호가 아니라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생모와 왕비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며, 제29대 법왕(法王, 재위 599∼600) 선(宣) 등의 자녀가 있었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는 혜왕이 위덕왕의 아들이며 헌왕(獻王)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명왕(明王)의 둘째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명왕은 성왕을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 ‘왕력’ 편에서 위덕왕의 이름을 창(昌)이 아니라 고(高)나 명(明)이라고 기록하면서 혜왕을 성왕의 아들이 아니라 위덕왕의 아들로 적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혜왕은 598년(위덕왕 45) 겨울에 형인 위덕왕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형인 위덕왕이 태자로 있을 때 신라와의 관산성(管山城, 지금의 옥천) 전투를 주도하고 왕위에도 45년이나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혜왕은 상당히 많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599년(혜왕 2)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고, 사후에 시호를 혜(惠)라고 하였다. 그의 맏아들인 선(宣)이 제29대 법왕(法王, 재위 599∼600)으로 왕위를 이었다. 그 역시도 이듬해 여름에 죽어 법왕의 아들인 무왕(武王, 재위 600∼641)이 왕위를 이었다.
혜왕과 법왕의 재위기간은 합해도 2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짧기 때문에 중국의 사서들에서는 위덕왕과 혜왕, 법왕, 무왕의 관계에 관해 혼란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수서(隋書)》에는 위덕왕 창이 죽고 아들인 법왕 선(宣)이 왕위에 오르고, 그가 죽자 아들인 무왕 장(璋)이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해 혜왕의 존재 자체가 빠져 있다. 《북사(北史)》에는 무왕이 위덕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니혼쇼키(日本書紀)》의 일왕 긴메이(欽明) 조에서는 554년(성왕 32) 성왕이 관산성(管山城) 공격에 나섰다가 매복해 있던 신라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자, 혜왕이 이듬해 봄에 형인 위덕왕의 사신으로 왜국으로 건너가 성왕의 죽음을 알렸으며 556년(위덕왕 3) 봄에 백제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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