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왕[ 寶臧王 ]
고구려의 제28대 마지막 왕(재위 642∼668).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나 ·당연합군의 침공으로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로 압송되었다. 고구려 부흥을 도모하다 쓰촨성에 유배되었다.
영류왕의 동생인 대양왕(大陽王)의 아들로 장왕(臧王)이라고도 한다.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실권은 연개소문이 가지고 있었다. 643년 연개소문의 주장에 따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교(道敎)를 구하여, 숙달(叔達) 등 도사(道士) 8명과 함께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받아들였다. 645년 당나라 태종이 침입하였으나 연개소문이 독전, 격퇴하였다. 661년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신라군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지만, 다음해 연개소문이 다시 격퇴하였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병사한 뒤에 내분으로 국정이 어지럽자, 668년 나 ·당(羅唐)연합군은 다시 고구려를 침입하였다.
당시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男生)은 고구려를 배반하고 당나라에 협력한 때이므로, 둘째 아들 남건(男建)이 막리지(莫離支)로서 나 ·당연합군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망하였고, 그는 당나라로 압송되었다. 뒤에 당나라로부터 사평대상백원외동정(司平大常伯員外同正)에 책봉되었다. 고구려 유민의 부흥운동이 지속되자 677년(문무왕 17)에 당은 그를 요동주도독 조선왕(遼東州都督朝鮮王)에 봉하고 안동도호부로 부임하게 하여 고구려 유민을 무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지역의 말갈족과 손을 잡고 고구려 부흥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681년(신문왕 1) 공주(邛州:쓰촨성 邛峽)에 유배되었다. 뒤에 당나라 고종은 위위경(衛尉卿)으로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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