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슈뢰딩거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파동역학의 건설자이다. L.V.드브로이가 제출한 물질파의 개념을 받아들여 미시 세계에서는 고전역학이 파동역학으로 옮겨간다는 생각을 기초방정식으로서의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 집약하였으며, 이것은 ‘원자이론의 새로운 형식의 발견’이었다.
빈 출생. 파동역학(波動力學)의 건설자이다. 화학을 공부한 후 식물학을 연구, 식물의 계통발생 논문을 발표했고, 그 밖에도 고대문법이나 독일시의 감상에도 재능을 보였다. 빈대학교에서 수학 중에 연속체(連續體)의 고유값[固有値] 문제를 연구했는데, 이것은 그 뒤의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슈투트가르트대학교(1920)를 비롯, 브레슬라우대학교 교수(1921)를 거쳐 라우에의 후임으로서 취리히대학교 교수(1921)로 취임했다. 여기에서 수학자 H.바일과 P.디바이와 알게 되어 고체비열 문제, 열역학 문제, 원자스펙트럼 등을 연구했다. 1926년 파동역학 연구를 하여, N.D.보어의 양자(量子)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이것을 고유값 문제에 관련시키려 하였다.
L.V.드브로이가 제출한 물질파(物質波)의 개념을 받아들여 미시 세계에서는 고전역학(古典力學)이 파동역학으로 옮겨간다는 생각을 기초방정식으로서의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 집약하였다. 이것은 당시 W.하이젠베르크 등이 탐구하고 있던 행렬역학(行列力學)과는 전혀 각도가 다른 길을 걸어 양자역학(量子力學)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자이론의 새로운 형식의 발견’으로 P.디랙과 함께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27년 이후 베를린대학에서 옥스퍼드대학으로,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대학으로 옮겼으나 나치스에 의한 오스트리아 병합(倂合) 때 이탈리아로 탈주하여 미국 프린스턴대학, 후에 더블린대학으로 옮겼다. 1940년 더블린아카데미 교수, 더블린고등연구소를 거쳐 동 연구소장으로 종사하고, 1956년 빈으로 돌아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자연과 그리스인 Nature and the Greeks》(1954) 《나의 세계관 Meine weltansicht》(1961)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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