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이사금[ 逸聖尼師今 ]
신라의 제7대 왕(재위 134~154).
성은 박(朴), 이름[諱]은 일성(逸聖), 왕호(王號)는 이사금(尼師今)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의 제3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재위 24∼57)의 적장자(嫡長子)로 유리이사금 왕비의 아버지인 일지갈문왕(日知葛文王)의 아들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유리이사금의 형이나 제6대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 재위 112~134)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왕비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인 박씨(朴氏)이며, 신라의 제8대 왕인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재위 154∼184) 등의 자식이 있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왕비가 일지갈문왕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80년(탈해 24) 제4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재위 57∼80)이 죽은 뒤에 신하들이 유리이사금의 태자였던 일성이사금을 왕으로 세우려 했지만, 동생인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재위 80∼112)이 더 위엄이 있고 현명해 그를 왕위에 앉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일성이사금은 파사이사금을 거쳐 조카인 지마이사금이 134년(지마 23)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은 뒤에야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134년은 유리이사금이 죽은 지 77년이나 지난 뒤이므로 이 기록대로라면 일성이사금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80세가 되어서야 왕위에 오른 것이 된다.
왕위에 오른 일성이사금은 136년(일성 3) 웅선(雄宣)을 이찬(伊湌)으로 임명해 내외병마사(內外兵馬事)를 겸하게 했으며, 근종(近宗)을 일길찬(一吉湌)으로 삼았다. 이 무렵에는 말갈(靺鞨)이 신라의 변경 지역을 자주 침범했는데, 137년(일성 3) 말갈은 장령(長嶺) 지역을 침공해 5개의 책성(柵城)을 불태웠다. 그래서 일성이사금은 이듬해 알천(閼川) 서쪽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직접 북쪽 지역을 돌아보며 태백산(太白山)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40년(일성 6) 가을 말갈은 다시 장령을 습격해 주민을 잡아가며 약탈을 저질렀고, 겨우내 말갈의 침략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자 신라는 이듬해 봄 장령에 책성을 세워 말갈에 대한 방어체제를 정비했다. 그리고 143년(일성 9)에는 왕이 직접 대신들을 불러 말갈 원정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찬인 웅선이 불가함을 밝혀 실행되지는 않았다. 147년(일성 13)에는 파사이사금 때에 복속시켰던 압독국(押督國,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고 그 지역 주민들을 남쪽으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148년(일성 14)에는 신하들에게 장수가 될 만한 지혜와 용기를 갖춘 자를 천거하라는 명을 내렸다.
일성이사금은 138년(일성 5) 금성(金城)에 정사당(政事堂)을 설치했는데, 이 기구는 대신들이 모여 중요한 국사를 논의하고 결정해 처리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52년(일성 18) 웅선이 죽은 뒤에는 대선(大宣)을 이찬으로 임명해 내외병마사를 겸하게 해 국정을 맡겼다.
한편, 일성이사금 때에는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해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39년(일성 6)에는 음력 7월에 서리가 내려 농작물이 죽었으며, 145년(일성 12)에는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149년(일성 16)에는 금성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으며, 150년(일성 17)에도 봄부터 여름까지 가뭄이 심했다. 이렇듯 가뭄 등으로 굶주리는 백성이 늘자 일성이사금은 144년(일성 11) 각 주와 군에 제방을 수리하고 논밭을 개간해 넓히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민간의 사치를 금해 금과 은, 주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145년(일성 12)에는 가뭄 피해가 큰 남쪽 지방 백성들에게 식량을 운반해 공급하기도 했다.
일성이사금은 154년(일성 21) 봄에 사망했으며, 그의 장남인 아달라이사금이 왕위를 이었다. 일성이사금의 장지(葬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오늘날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고분을 일성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다. 경주일성왕릉은 사적 제173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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