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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신라 왕조 계보

벌휴이사금[ 伐休尼師今 ]

by 1티어 율쌤 2022.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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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휴이사금[ 伐休尼師今 ]

신라의 제9대 왕 (재위 184∼196). 

성은 석(昔), 이름[諱]는 벌휴(伐休)이며 발휘(發暉)라고도 한다. 왕호(王號)는 이사금(尼師今)이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벌휴이질금(伐休尼叱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제4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재위 57∼80)의 손자로 아버지는 각간(角干) 구추(仇鄒)이고 어머니는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 김씨(金氏)이다.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은 184년(아달라 31)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재위 154~184)이 죽은 뒤 왕위에 올랐다. 신라는 제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재위 80~112)부터 제8대 아달라이사금까지는 박씨(朴氏)가 왕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아달라이사금에게 아들이 없자 나라사람들이 탈해이사금의 손자인 벌휴이사금을 왕으로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벌휴이사금이 왕위에 오른 것은 탈해이사금이 죽은 지 100년이 넘어서의 일이므로 그가 탈해이사금의 손자라는 가계(家系)의 기록은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벌휴이사금이 바람과 구름을 보고 점을 쳐서 홍수와 가뭄, 풍년과 흉년을 미리 알았으며, 사람이 바른지 삿된지도 알아 성인(聖人)으로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185년(벌휴 2) 군정(軍政)을 담당하는 군주(軍主)의 직위를 만들어 파진찬(波珍湌) 구도(仇道)와 일길찬(一吉湌) 구수혜(仇須兮)를 좌우군주(左右軍主)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주변의 소국(小國)들을 복속시키고, 서쪽 변경을 자주 침범해온 백제를 막게 했다. 185년 소문국(召文國,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을 정벌했으며, 188년(벌휴 5)에는 백제가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해오자 구도로 하여금 이를 막게 했다. 구도는 이듬해 구양성(狗壤城)에서 백제군에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190년(벌휴 7) 백제가 원산향(圓山鄕)과 부곡성(缶谷城)을 공격해왔을 때에는 유인작전에 넘어가 와산(蛙山)에서 백제에 패했다. 벌휴이사금은 구도를 부곡성의 성주(城主)로 강등시키고 설지(薛支)를 새로 좌군주(左軍主)로 임명했다.

이처럼 벌휴이사금의 재위기간에 신라는 백제와 영토를 놓고 자주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왜(倭)와는 아달라이사금과 마찬가지로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193년(벌휴 10)에는 왜인 1천여 명이 기근을 피해 신라로 식량을 구하려 찾아오기도 했다. 벌휴이사금은 민생도 중하게 여겨 186년(벌휴 3)에는 직접 각 주와 군을 돌면서 민정을 살폈다. 187년(벌휴 4)에는 농사철에는 토목사업을 벌이지 말도록 각 주와 군에 명하기도 했다.

벌휴이사금은 196년(벌휴 13) 여름에 사망했다. 왕비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골정(骨正)과 이매(伊買)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두 아들이 모두 일찍 죽었으며, 맏아들인 골정의 아들 조분(助賁)은 아직 나이가 어렸다. 그래서 둘째아들인 이매의 아들이 왕위를 이었으니, 그가 신라의 제10대 왕인 내해이사금(奈解尼師今, 재위 195∼23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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