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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신라 왕조 계보

진지왕[ 眞智王 ]

by 1티어 율쌤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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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왕[ 眞智王 ]

 

신라의 제25대 왕(재위 576∼579).

 

성은 김(金)이고, 이름[諱]은 사륜(舍輪)이며 금륜(金輪)이라고도 한다. 시호(諡號)는 진지(眞智)이며, 《삼국유사》에는 이름을 따서 사륜왕(舍輪王)이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신라의 제24대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형인 동륜(銅輪)이 572년(진흥왕 33)에 사망하는 바람에 진흥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 어머니는 사도부인(思道夫人) 박씨(朴氏)이다. 그는 기오공(起烏公)의 딸인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朴氏)를 왕비로 맞이해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아버지인 이찬(伊湌) 김용춘(金龍春)을 낳았다. 《삼국유사》 ‘왕력(王曆)’ 편에는 어머니는 색도부인(色刀夫人) 박씨, 왕비는 여도부인(如刀夫人) 박씨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지왕(眞智王)은 576년(진흥왕 37) 진흥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한 뒤에 이찬(伊湌) 거칠부(居柒夫)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해 나랏일을 맡겼으며, 577년(진지왕 2)에는 직접 신궁(神宮)에서 제사를 지내고 대대적으로 죄인을 사면했다. 그해 10월 백제(百濟)가 쳐들어오자 이찬 세종(世宗)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출병케 하여 일선(一善)의 북쪽에서 백제군을 크게 물리치고 내리서성(內利西城)을 쌓았다. 578년(진지왕 3)에는 중국의 진(陳)나라에 사신을 보내 수교했고, 백제를 공격해 알야산성(閼也山城)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듬해 백제는 융현성(熊峴城)과 송술성(松述城)을 쌓아 신라 서북지역에 위치한 산산성(蒜山城), 마지현성(麻知峴城), 내리서성(內利西城)으로 가는 통로를 막아 고립시켰다. 진지왕은 그해 가을에 재위 4년 만에 죽었으며,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매장되었다.


진지왕은 579년(진지왕 4) 가을에 재위 4년 만에 죽었으며,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진지왕이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주색에 빠져 음란하고 정사가 어지러우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으며, 죽은 뒤에 애공사(哀公寺) 북쪽에 매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지왕이 죽은 뒤에 형인 동륜(銅輪)의 아들인 백정(白淨)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가 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이다. 그 뒤 진평왕의 딸인 선덕여왕(재위 632~647)과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 갈문왕(國飯葛文王)의 딸 진덕여왕(재위 647~654) 등 동륜(銅輪)의 후손들에게 왕위가 계승되다가, 진덕여왕이 죽은 뒤에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金春秋)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 뒤 신라에서는 29대 태종무열왕에서 36대 혜공왕(재위 765~780)까지 진지왕의 후손들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한편, 《삼국유사》의 ‘미륵선화 미시랑 진자사(彌勒仙花未尸郎眞慈師)’ 조에는 진지왕 때에 미륵선화(彌勒仙花)의 화신으로 여겨진 미시랑(未尸郎)을 국선(國仙)으로 삼아 풍류(風流)의 도를 널리 보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도화녀 비형랑(桃花女鼻荊郞)’ 조에는 진지왕이 죽은 뒤에 도화(桃花)라는 여인에게 나타나 7일을 머물다가 떠나서 비형(鼻荊)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비형은 귀신을 부리고 잡귀를 물리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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