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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백제 왕조 계보

기루왕[ 己婁王 ]

by 1티어 율쌤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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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왕[ 己婁王 ]

 

성은 부여(扶餘)이며, 백제의 제2대 왕인 다루왕(多婁王, 재위 28∼77)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삼국유사》의 일부 필사본에는 사루왕(巳婁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생모와 왕비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기루왕(己婁王)은 뜻과 식견이 넓고 원대해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33년(다루왕 6)에 태자가 되었고, 77년(다루왕 50) 가을에 아버지 다루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기루왕은 부친인 다루왕 때와 마찬가지로 말갈(靺鞨), 신라와 대립하며 영토를 동쪽으로 확장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85년(기루왕 9)에는 군대를 보내 신라의 변경을 침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라의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재위 80∼112)이 주변의 소국을 점령하며 영토 확장에 나서면서 신라에 나이군(奈已郡,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을 빼앗기기도 했다. 기루왕은 105년(기루왕 29)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했으며, 파사이사금이 죽고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 재위 112∼134)이 왕위에 오르자 113년(기루왕 37)에도 신라에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125년(기루왕 49)에는 말갈의 침공을 받은 신라가 원병을 요청해오자 다섯 장수가 이끄는 군대를 보내 신라를 도와 말갈을 물리쳤다.

이처럼 신라와는 우호관계를 형성했으나, 말갈은 기루왕 때에도 자주 변경을 침범하며 약탈을 자행했다. 말갈은 108년(기루왕 32)에도 우곡(牛谷)을 침범해 백성들을 약탈하고 물러나기도 했다.

한편, 《삼국사기》의 기루왕 조에는 유독 천재지변이나 기이한 일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기루왕의 재위기간에 백제 사회가 평안하지 않았음을 반영한다고 해석한다. 89년에는 땅이 갈라질 정도로 큰 지진이 일어나 주민들의 집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90년에는 봄에 큰 가뭄이 들어 보리가 나지 않았고, 여름에는 나무가 쓰러질 정도로 큰 태풍이 닥쳤다. 93년에는 횡악(橫岳)에서 큰 바위 다섯 개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고, 97년에는 두 마리의 용이 한강에 출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99년에는 서리와 우박으로 곡물 피해가 컸고, 108년에는 봄에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정도로 심각한 기근이 닥쳤다. 111년에는 봄과 겨울에 지진이 일어났으며, 116년에는 큰 비가 내려 한강이 범람해 수많은 가옥과 농지가 물에 잠겼다.

128년(기루왕 52) 겨울에 죽었고, 맏아들인 개루왕(蓋婁王)이 왕위를 이었다. 장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아 왕릉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고이왕(古尒王, 재위 234~286) 때인 242년(고이왕 9)에 우보(右輔)로 임명된 부여질(扶餘質)에 관해 고이왕의 숙부, 곧 개루왕의 형제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부여질도 기루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셈인데, 기루왕과 고이왕 사이에는 120년 정도의 연대 차이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개루왕과 고이왕, 부여질의 관계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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