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왕[ 肖古王 ]
성은 부여(扶餘)이며, 소고왕(素古王)이라고도 한다. 백제의 제4대 왕인 개루왕(蓋婁王, 재위 128∼166)의 맏아들이며, 생모와 왕비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166년(개루왕 39)에 아버지 개루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백제의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초고왕은 167년(초고왕 2) 신라의 서쪽 변경으로 쳐들어가 두 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1천여 명의 주민을 붙잡아왔다. 그러나 신라의 아달라이사금은 일길찬(一吉湌) 흥선(興宣)으로 하여금 2만의 병력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케 했으며, 그 자신도 직접 8천 명의 정예기병을 이끌고 한수(漢水)까지 진격해왔다. 초고왕은 신라에게 빼앗은 2개의 성과 붙잡아왔던 주민들을 돌려주며 신라에 화친을 청해 물러났다.
170년(초고왕 5) 겨울에도 다시 신라를 공격했고, 188년(초고왕 23)에도 군사들을 보내 신라의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했다. 189년에는 구양성(狗壤城)에서 좌군주(左軍主) 구도(仇道)가 이끄는 신라군에 패했으나, 이듬해 다시 신라 서쪽 변경의 원산향(圓山鄕)과 부곡성(缶谷城)을 공격했을 때에는 유인작전을 펼쳐 와산(蛙山)에서 신라군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199년(초고왕 34)에도 신라를 침공했고, 204년(초고왕 39)에는 신라의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해 성주 설부(薛夫)를 죽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신라의 제10대 내해이사금(奈解尼師今, 재위 196~230)은 이벌찬(伊伐湌) 이음(利音)을 장수로 삼아 6부의 정예군을 보내 백제의 사현성(沙峴城)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이 일이 204년이 아니라 내해이사금 19년 때인 214년에 일어난 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초고왕 때에 백제는 신라와 자주 충돌했을 뿐 아니라, 한강 상류 지역으로 영토 확장을 꾀하면서 말갈과도 대립하였다. 210년(초고왕 45) 적현성(赤峴城)과 사도성(沙道城)을 쌓아 동부(東部)의 주민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켰고, 말갈이 사도성을 공격해왔으나 이를 물리쳤다. 214년(초고왕 49)에는 북부(北部)의 진과(眞果)에게 명해 말갈의 석문성(石門城)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188년에는 궁궐을 중수했다. 한편, 그의 재위기간에는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는데, 208년에는 메뚜기 떼가 창궐하고 가뭄이 들어 도적이 많이 생겼고, 211년에도 메뚜기 떼에 농작물이 피해를 입어 기근이 닥쳤다고 한다.
214년(초고왕 49) 겨울에 사망했고, 그의 맏아들인 구수왕(仇首王)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장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왕릉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초고왕이 제8대 고이왕(古尒王, 재위 234~286)의 동모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개루왕과 고이왕 사이에는 120년 정도의 연대 차이가 존재하고 있어서 초고왕과 고이왕이 동모 형제라는 기록은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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