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루왕[ 多婁王 ]
성은 부여(扶餘)이며,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의 원자(元子)로 태어났다. 생모와 왕비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는 온조왕의 둘째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후 10년(온조왕 28) 태자가 되었으며, 28년(온조왕 46) 온조왕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에는 다루왕(多婁王)이 너그럽고 후했으며 위엄과 인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위에 오른 다루왕은 29년(다루왕 2) 시조인 동명왕(東明王)의 묘당에 제사를 지냈으며, 33년(다루왕 6) 맏아들인 기루(己婁)를 태자로 삼았다. 그 해에 남쪽의 주(州)와 군(郡)에 명령을 내려 논농사를 시작했고, 34년(다루왕 7)에는 우보(右輔)인 해루(解婁)가 죽자 동부(東部, 백제건국 초기의 부족명칭)의 흘우(屹于)를 우보로 삼았다. 37년(다루왕 10)에는 우보인 흘우를 좌보(左輔)로 삼고, 북부(北部, 백제건국 초기의 부족명칭)의 진회(眞會)를 우보로 임명했다. 38년(다 루왕 11)에는 흉년이 들자 백성들이 사사로이 술 빚는 것을 금지했고, 직접 동부와 서부를 돌며 백성들을 위로했다.
다루왕의 재위기간에 백제는 말갈, 신라와 대립하며 영토를 동쪽으로 확장했다. 30년(다루왕 3) 동부의 흘우가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말갈과 싸워 승리했고, 31년(다루왕 4)에도 고목성(高木城)의 곤우(昆優)가 말갈과 싸워 크게 승리했다. 34년에는 말갈이 마수성(馬首城)을 쳐들어와 함락시키고, 병산(甁山)의 책성(柵城)도 습격해왔다. 말갈은 55년에도 백제의 북쪽 변경을 쳐들어왔다. 56년 왕은 동부에 명령해 우곡성(牛谷城)을 쌓아 말갈을 방어하게 했다. 63년에는 낭자곡성(娘子谷城)까지 영토를 개척했으며, 신라왕에게 사신을 보내 만나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자 다루왕은 64년 군대를 보내 신라의 와산성(蛙山城)과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했다. 66년에는 다시 와산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군사 200명을 그곳을 주둔하게 했으나, 신라의 반격을 받아 곧 철수했다. 다루왕은 70년과 74년에도 군대를 보내 신라를 침공했다. 75년에는 와산성을 공격해 함락시켰으나 이듬해 다시 신라에게 빼앗겼다.
다루왕은 77년(다루왕 50) 가을에 죽었으며, 태자인 기루왕(己婁王)이 왕위를 이었다. 장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아 왕릉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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