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왕[ 契王 ]
성은 부여(扶餘)이며, 백제의 제10대 분서왕(汾西王, 재위 298∼304)의 맏아들이다. 생모와 왕비,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사기》에는 304년(분서왕 7) 겨울에 분서왕이 낙랑의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자, 계왕(契王)을 비롯한 분서왕의 여러 아들들이 모두 나이가 어려 신하들과 백성들이 제6대 구수왕(仇首王, 재위 214∼234)의 둘째아들이자 제7대 사반왕(沙伴王, 재위 234)의 동생인 비류왕(比流王, 재위 304∼344)을 왕으로 추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비류왕이 오랜 기간 민간에 있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구수왕과 비류왕의 연대 차이를 고려하면 비류왕이 구수왕의 아들이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분서왕이 죽은 뒤에 백제의 왕위가 제8대 고이왕(古尒王, 재위 234~286)의 후손들에게서 제6대 구수왕의 후손들에게로 넘어간 것이 그렇게 서술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계왕(契王)이 천성적으로 강직하고 용맹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344년(비류왕 41) 겨울에 비류왕이 죽은 뒤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에는 전에 분서왕이 죽었을 때에는 계왕이 어려서 왕위에 오를 수 없었으나 비류왕이 재위 41년 만에 죽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위에 오른 계왕은 345년(계왕 2) 여름에 시조 동명왕(東明王)의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이듬해인 346년(계왕 3) 가을에 죽었고, 비류왕의 둘째아들인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이 왕위에 올라 그 뒤로는 비류왕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백제의 왕위를 잇게 되었다. 곧 계왕은 고이왕계의 마지막 백제왕인 셈이다. 계왕의 장례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아 왕릉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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