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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백제 왕조 계보

분서왕[ 汾西王 ]

by 1티어 율쌤 2022.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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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왕[ 汾西王 ]

 

성은 부여(扶餘)이며, 백제의 제9대 책계왕(責稽王, 재위 286~298)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대방(帶方)의 왕녀(王女)인 보과부인(寶菓夫人)이다. 왕비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며, 제12대 계왕(契王, 재위 344∼346)을 비롯한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분서왕(汾西王)이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풍채가 뛰어났으며, 아버지 책계왕의 총애를 받아 늘 곁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298년(책계왕 13) 가을에 책계왕이 한인(漢人)과 맥인(貊人)의 침공을 받아 전사하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분서왕은 죄수들을 대규모로 사면하고, 299년(분서왕 2)에는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인 고구려 동명왕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304년(분서왕 7)에는 낙랑(樂浪)의 서쪽 현을 기습해 빼앗았다. 분서왕 때 백제는 낙랑 등 한(漢)나라의 군현(郡縣) 세력을 여러 차례 공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의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재위 298~310)에 관한 기록에서는 300년에 낙랑과 대방(帶方) 주민들이 신라로 투항해 오자 신라가 그들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고구려는 모용외(慕容廆, 269~333)가 이끄는 선비족(鮮卑族)의 침공에 시달리고 있어서 낙랑을 공격할 여력은 없었으므로, 그들의 투항은 백제의 공격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추정된다. 

분서왕은 304년(분서왕 7) 겨울 낙랑의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고, 계왕을 비롯한 아들들이 모두 어렸기 때문에 제6대 구수왕(仇首王, 재위 214∼234)의 둘째아들이자 제7대 사반왕(沙伴王, 재위 234)의 동생인 비류왕(比流王, 재위 304~344)이 왕위를 이었다. 구수왕과 비류왕의 연대 차이가 크기 때문에 비류왕이 구수왕의 아들이라는 이 기록은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 어려우며, 사반왕 이후 고이왕계로 넘어갔던 왕위가 비류왕 때에 이르러 다시 구수왕계로 이어지게 된 것이 부자 관계로 기록된 것으로 해석된다. 분서왕의 아들인 계왕은 344년(비류왕 41) 비류왕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올랐다. 장례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왕릉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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