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 文武王 ]
신라의 제30대 왕(재위 661∼681).
성은 김(金), 이름[諱]은 법민(法敏), 시호는 문무(文武)이다. 이름을 따서 법민왕(法敏王)이라고도 하며, 《삼국유사》에는 ‘문호왕(文虎王)’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적장자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김유신(金庾信)의 누이인 문명왕후(文明王后) 김씨이다. 파진찬(波珍飡) 선품(善品)의 딸인 자의왕후(慈儀王后)를 비로 맞이해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을 낳았고, 다른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유사》 ‘왕력(王曆)’ 편에는 왕비는 선품(善品) 해간(海干)의 딸 자의(慈義)로 자눌왕후(慈訥王后)라고도 하며, 어머니는 훈제부인(訓帝夫人)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무왕은 외모가 영특하고 총명하며 지략이 많았다. 650년(진덕여왕 4)에는 사신으로 당나라로 건너가 당나라 고종(高宗, 재위 649~683)에게 진덕여왕(眞德女王, 재위 647∼654)이 지은 《태평송(太平頌)》을 전했고, 대부경(大府卿)의 지위를 받고 귀국했다. 654년(무열왕 원년) 무열왕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파진찬(波珍湌)의 지위에 올라 병부령(兵部令)으로 임명되었고, 655년(무열왕 2)에 태자로 봉해졌다. 660년(무열왕 7)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를 공격할 때에는 병선 1백 척을 이끌고 덕물도(德物島, 지금의 덕적도)로 가서 소정방(蘇定方)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를 맞이했고, 두 나라 군대가 각각 해로와 육로로 진격해 사비성(泗沘城)에서 만나기로 협의했다. 그리고 웅진성(熊津城)에서 백제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도 공을 세웠다.
문무왕은 661년(무열왕 8) 무열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아버지 무열왕의 뜻을 계승해 백제 잔존세력의 저항운동을 진압하고, 668년(문무왕 8)에는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 평양성을 함락시켜 삼한일통(三韓一統)의 대업을 완수했다. 676년(문무왕 16)에는 나당전쟁(羅唐戰爭)에서 승리해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옛 고구려의 남쪽 지방까지 영토를 크게 넓혔다. 그래서 문무왕은 아버지 무열왕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왕으로 숭배되었다. 《삼국사기》의 ‘잡지(雜志)’에는 신라의 종묘(宗廟) 제도에 관해 설명하면서 아버지·할아버지와 함께 김씨 왕조의 시조인 미추왕(味鄒王), 무열왕과 문무왕을 5묘(五廟)로 정해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40대 애장왕(哀莊王, 재위 800~809) 때에는 고조부부터의 4대와 시조를 5묘로 정했는데, 그때에도 무열왕과 문무왕의 2묘(二廟)를 별도로 세워 제사 지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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