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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신라 왕조 계보

경덕왕[ 景德王 ]

by 1티어 율쌤 202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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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 景德王 ]

 

신라의 제35대 왕(재위 742∼765).

성은 김, 이름은 헌영(憲英), 시호는 경덕(景德)이다. 신라의 제33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찬(伊湌) 순원(順元)의 딸인 소덕왕후(炤德王后)이다. 처음에는 이찬 순정(順貞)의 딸을 비로 맞이했으나, 왕위에 오른 뒤인 743년(경덕왕 2) 서불한(舒弗邯) 김의충(金義忠)의 딸인 만월부인(滿月夫人) 김씨를 새로 왕비로 맞이했다. 만월부인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자인 김건운(金乾運, 제36대 혜공왕)을 낳았으며, 다른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는 처음 왕비는 삼모부인(三毛夫人)으로 출궁되어 후사가 없었으며, 후비인 만월부인의 시호는 경수왕후(景垂王后)로 경목왕후(景穆王后)라고도 한다고 나온다. ‘기이’ 편의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 조에는 첫 번째 왕비가 아들이 없어 폐비되어 사량부인(沙梁夫人)으로 봉해졌다고 적혀 있다.

경덕왕은 친형인 효성왕(孝成王, 재위 737∼742)에게 자식이 없었으므로 왕제로서 태자가 되었으며, 742년(효성왕 6) 효성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경덕왕은 744년 이찬 유정(惟正)을 중시(中侍)로 임명해 국정을 맡겼다. 하지만 이듬해 유정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이찬 대정(大正)을 중시로 삼고, 이찬 김사인(金思仁)을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했다. 중시의 명칭을 시중(侍中, 747년)으로 바꾼 경덕왕은 조량(朝良), 이찬 김기(金耆), 이찬 염상(廉相), 이찬 김옹(金邕)을 차례로 시중으로 삼고, 대이찬 신충(信忠)을 상대등으로 임명했다. 이후 764년(경덕왕 23)에는 아찬 양상(良相)을 시중으로 삼고, 이찬 만종(萬宗)을 상대등으로 임명해 국정을 맡겼다.

경덕왕은 746년(경덕왕 5) 관청과 궁내 관리들의 풍기를 단속하는 내사정전(內司正典)을 설치하고, 748년에는 그곳에 관리들의 감찰을 담당하는 정찰(貞察)의 직위를 두는 등 귀족과 관리들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758년에는 60일 이상 휴가를 얻은 관리는 내직이나 외직이나 모두 해직으로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757년에는 신문왕 때인 689년(신문왕 9)부터 관리들에게 지급되었던 월봉(月俸)을 없애고 녹읍(祿邑)을 부활하였다.

그리고 759년(경덕왕 18)부터는 조정과 궁궐 안의 각 부서의 명칭을 대대적으로 바꾸어 중앙의 행정체계를 정비하려 했다. 조부(調府)를 대부(大府)로, 사정부(司正府)를 숙정대(肅正臺)로, 경성주작전(京城周作典)을 수성부(修城府)로, 예작부(例作府)를 수례부(修例府)로, 영객부(領客府)를 사빈부(司賓府)로, 위화부(位和府)를 사위부(司位府)로, 상사서(賞賜署)를 사훈감(司勳監)으로, 전읍서(典邑署)를 전경부(典京府)로, 국학(國學)을 태학감(太學監) 등으로 명칭과 체계를 바꾸었다. 무열왕 때인 657년에 설치되었던 대일임전(大日任典)은 도시 행정을 담당하는 전경부(典京府)로 통합하였고, 왕실 사찰들을 관리하던 사천왕사성전(四天王寺成典), 봉성사성전(奉聖寺成典), 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 봉덕사성전(奉德寺成典), 영묘사성전(靈廟寺成典) 등의 기구는 감사천왕사부(監四天王寺府), 수영봉성사사원(修營奉聖寺使院), 수영감은사사원(修營感恩寺使院), 수영봉덕사사원(修營奉德寺使院), 수영영묘사사원(修營靈廟寺使院)으로 명칭을 바꾸고, 그곳에 소속된 금하신(衿荷臣)의 직위도 검교사(檢校使)로 명칭을 바꾸었다. 각 부서에 속한 관직의 명칭도 정비했는데, 집사부(執事部)의 전대등(典大等), 병부(兵部)와 창부(倉部)의 대감(大監)은 시랑(侍郞)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 밖에 다른 부서에 속한 관직도 상당수 개칭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주(州)·군(郡)·현(縣)의 명칭과 행정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이는 삼국통일 이전 옛 고구려와 백제·가야 시대의 명칭이 뒤섞여 사용되고 있던 지명(地名)을 정비해 지방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앙정부의 지방통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사벌주(沙伐州)는 상주(尙州)로 이름을 바꾸고 10군 30현을 소속시켰고, 삽량주(歃良州)는 양주(良州)로 바꾸고 1소경 12군 34현을 소속시켰다. 그리고 금관소경(金官小京)은 김해경(金海京), 국원소경(國原小京)은 중원경(中原京), 북원소경은 북원경(北原京), 서원소경은 서원경(西原京), 남원소경은 남원경(南原京)으로 하였다. 이러한 경덕왕 때의 정비작업으로 운봉(雲峰)·거제(巨濟)·거창(居昌)·고령(高靈)·삼척(三陟)·부여(扶餘)·김제(金堤)·영암(靈巖)·임실(任實)·무안(務安) 등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각 지역의 명칭이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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