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해이사금[ 沾解尼師今 ]
신라의 제12대 왕 (재위 247∼261).
성은 석(昔), 이름은 첨해(沾解), 왕호(王號)는 이사금(尼師今)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이해이질금(理解尼叱今)’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제9대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 재위 184∼196)의 손자로, 아버지는 세신갈문왕(世神葛文王) 골정[骨正, 홀쟁(忽爭)이라고도 한다]이며 어머니는 구도갈문왕(仇道葛文王)의 딸인 옥모부인(玉帽夫人) 김씨(金氏)이다. 제11대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 재위 230∼247)의 동복동생이며, 왕비와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은 247년(조분 18) 형인 조분이사금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조분이사금에게는 나음갈문왕(奈音葛文王)의 딸인 박씨(朴氏)와의 사이에서 낳은 유례(儒禮, 제14대 유례이사금 재위 284~298) 등의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동생인 첨해이사금이 왕위를 물려받은 이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첨해이사금은 왕위에 오른 뒤에 아버지인 골정을 세신갈문왕으로 봉하고, 이찬(伊湌) 장훤(長萱)을 서불한(舒弗邯)으로 삼아 국정을 맡겼다. 249년(첨해 3)에는 양부(良夫)를 이찬으로 임명하고, 궁궐 남쪽에 ‘도당(都堂)’이라고도 하는 ‘남당(南堂)’을 짓고, 251년(첨해 5)부터 그곳에서 정사를 처리했다. 그 해에 글씨와 산수(算數)가 뛰어나 이름이 높던 한기부(漢祇部)의 부도(夫道)를 아찬(阿湌)으로 임명해 물장고(物藏庫)의 사무를 맡겼다.
첨해이사금은 조분이사금 때에 신라의 북쪽 변경을 자주 침범했던 고구려와는 사신을 보내 화친을 하였으나, 백제와는 대립했다. 신라에 복속해 있던 사량벌국(沙梁伐國)이 배신해 백제와 손을 잡자 석우로(昔于老)를 보내 멸망시키고 주(州)를 설치했다. 이곳은 처음에는 상주(上州)라고 하였으나, 뒷날 경덕왕(景德王) 때에 상주(尙州)로 명칭이 바뀌었다.
백제는 255년(첨해 9) 신라를 공격해 왔고, 일벌찬(一伐湌) 익종(翊宗)이 그들과 싸우다가 괴곡(槐谷) 서쪽에서 전사했다. 백제는 봉산성(烽山城)도 공격해왔으나 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첨해이사금은 261년(첨해 15) 달벌성(達伐城)을 쌓고 나마(奈麻) 극종(克宗)을 성주로 임명해 지키게 했다. 그리고 그해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해 겨울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 첨해이사금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조분이사금의 사위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재위 262~284)이 왕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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